▢ 연구필요성 및 연구목적
○ 연구 목적
유해화학물질 노출 피해 사건에서, 법원이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유해화학물질 노출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존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법원이 인과관계 판단을 위해 합리적으로 과학적 증거를 해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연구 필요성
(화학물질 노출 피해 사례 증가) 삼성 반도체 공장 직업병, 고엽제·석면·담배 등으로 인한 피해 관련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되었고,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이 화학물질 제품의 제조·판매자들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책임을 추궁하는 형사소송도 제기되었다.
(과학적 증거에 의한 법적 인과관계 판단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 화학물질 노출과 건강상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존부 판단에 대해 법원이 취하고 있는 상당인과관계설은 규범적 개념인 ‘상당성’의 판단에 대해 구체적이고 일관된 기준을 말해주지 못 한다.
(화학물질 노출 피해의 특성과 인과관계 증명의 다층적 난점)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건강상 피해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병인과 질환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경우 과학적 연구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고,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원고 또는 검찰 측이 인과관계 증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화학물질 노출-피해 인과관계 관련 법리의 발전과 한계) 화학물질 위해성 판단과 노출-피해 인과관계 판단을 위해 증거로 제출되는 과학적 연구결과는 그 자체로 논쟁의 대상이 되고, 기존에 위해성이 알려지지 않은 물질의 위해성을 밝히는 데에는 많은 경우에는 표준적인 연구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 이처럼 화학물질의 위해성에 관한 과학적 지식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학적 방법론의 변화와 발전이 사법판단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 연구방법
○ 과학적 증거를 통한 법적 인과관계 판단 방식 검토
(형법적 인과관계 이론 검토) 형법적 인과관계의 의의, 인과관계 이론 및 객관적 귀속이론을 필요한 범위에서 알아보고, 인과관계 증명에 관해서 증거재판주의와 엄격한 증명의 원칙 그리고 사실로서의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 정도를 검토한다.
(인과관계 인정에 동원되는 과학적 증거의 의의 분석) 과학적 증거의 개념 및 유형 그리고 과학적 증거와 관련된 법적 쟁점을 살펴본다.
(과학적 증거의 허용성 기준) 과학적 증거의 허용성에 관한 미국 판례법의 기준의 내용과 이 기준이 국내법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간접증거에 의한 인과관계 인정) 간접증거에 기초한 인과관계 인정에 관한 법적 논의, 화학물질 노출-피해의 인과관계 증명에 동원되는 과학적 증거 생산 방법의 기본적 전제를 살펴본다.
(유해성 판단 방법)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 판단 방식과 독성학적 연구, 인간 대상 역학적 연구, 의학적 진단의 기본틀을 살펴본다.
(역학연구로부터 인과관계 추론) 과학적 이해의 대상으로서의 인과관계의 의의, 화학물질 노출-피해 인과관계 판단 법리(손해배상사건 및 형사 사건), 역학연구로부터 일반적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기준(Hill‘s criteria)과 역학연구로부터 구체적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기준을 검토한다.
○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건 분석
(토픽 모델링) 증인신문 기록과 판결문에 대한 정량적 분석(핵심어 빈도, 핵심어 관계, 토픽 모델링)을 통해서 해당 텍스트의 내재적인 의미 구조를 객관화하고, 인과관계 입증을 둘러싸고 검찰, 피고인 측, 재판부가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내용 분석) 증인신문 기록과 판결문 내용 분석을 통해서 사건에서 다루어진 과학적 증거의 유형(노출재연시험과 위해성 평가, 동물 및 세포 독성시험, 역학연구)과 내용을 파악하고, 각 증거에 대한 전문가 증인신문 쟁점을 파악한다.
▢ 주요 연구내용
○ CMIT/MIT 노출과 건강 피해의 인과관계 입증에 관한 쟁점
(쟁점 1: 실험적 증거의 중요도) 화학물질 노출과 건강피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실험적 증거에 어느 정도의 가중치를 두어야 하는지에 관해서, ① 전문가 증인들은 임상사례와 역학연구 결과를 우선 고려해야 하고 동물모델을 이용한 실험은 임상과 역학에서 확인된 현상을 확인하고 기전을 규명하기 위한 보충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으나, ② 피고인 측은 실험 결과가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확실하고도 필수적인 증거라고 주장하였으며, ③ 재판부는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쟁점 2: 동물독성시험 결과 해석) 동물독성시험에서 임상사례의 폐질환 및 천식과 동일한 결과가 관찰되지 않은 결과의 의미 해석에 관해서, ① 전문가 증인들은 동물에게서 사람과 동일한 결과가 관찰되지 않은 것은 사람에게서 보고된 독성영향을 재연할 수 있는 동물모델을 구축하는 데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으나, ② 피고인 측은 이러한 결과가 CMIT/MIT 노출로 인한 질병 유발 가능성이 없거나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였으며, ③ 재판부는 전문가 증인의 진술이 형사소송상 인과관계 증명에서는 채택할 수 없는 견해라고 판단하고 변호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쟁점 3: 동물독성시험 결과 해석) CMIT/MIT 노출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준 연구의 방법상 한계에 관해서, ① 전문가 증인들은 자기가 수행한 연구의 제한점을 밝히고 과학자들 간에 토론과 논쟁을 통해 방법과 결과 해석을 정교화하는 일반적인 과학 활동의 실천에 따라 다양한 해석 가능성과 이견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취하였으나, ② 피고인 측은 CMIT/MIT 노출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지지하는 결과를 보인 연구의 방법상 한계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펼침으로써 연구방법 설계의 적절성(노출량 측정 방법, 위해성 평가 방법, 동물독성시험에서의 노출경로와 노출농도, 역학연구의 연구대상 집단 선정의 적절성, 환경노출조사 방법의 객관성 등)을 주요 쟁점으로 삼았고, 과학 활동의 중요한 요소인 과학자들 간의 토론과 논쟁을 과학적 증거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여 과학적 증거의 불확실성을 부각시켰으며, ③ 재판부는 과학자들의 여러 의견 중 어떤 것이 타당한지 판단하기보다는 과학적 증거에 대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 CMIT/MIT 노출과 건강 피해의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자의 판단
(판단) 과학자 증인들은 ① 임상사례와 ② 역학연구에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폐질환과 천식을 유발한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③ 성분 물질의 위해성이 있으며, ④ 동물독성시험에서 호흡기와 폐에 독성영향이 관찰되므로 인과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과학적 증거 우선순위) 과학자 증인들은 사람에게서 건강 피해가 보고된 사례가 있는 경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과학적 활동은 일반적으로 임상사례와 역학연구를 우선시하였고, 동물 및 세포 독성시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적 조작이 불가능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한 보충적 자료로 보았다.
○ CMIT/MIT 노출과 건강 피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판단) 1심 재판부는 실험에서 사람과 동일한 폐질환과 천식증상이 명확하게 관찰되지 않았고, CMIT/MIT가 폐에 도달한다는 것을 입증한 시험도 없으므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논리) 1심 재판부는 ① CMIT/MIT의 폐질환, 천식 유발 또는 악화 영향, ② CMIT/MIT의 폐 도달 여부, ③ CMIT/MIT의 폐 축적량이 확인되어야 CMIT/MIT가 이 사건 폐질환 및 천식의 원인물질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적 구조에 따라 인과성을 판단하였다.
(과학적 증거 우선순위) 1심 재판부는 동물 및 세포 독성시험을 우선시하여 독성 영향, 폐 도달, 폐 축적량은 이론적 추정이 아닌 실험에서 관찰된 바에 따라 입증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임상사례는 인과관계를 지지하는 증거가 아닌 원인이 규명되어야 할 결과에 불과하며 역학연구는 연관성을 보여줄 뿐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 CMIT/MIT 노출과 건강 피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재판부 판단 방법의 문제점
(과학계의 경험칙보다는 일반적 경험칙에 의존) 1심 재판부는 논리성이나 사회생활상의 경험칙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과학적 견해를 필요로 하는 과학적 증거의 증명력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일반적인 경험칙에 의존함으로써 동물독성시험의 ‘무위 결과(null result)’를 근거로 CMIT/MIT와 폐질환 등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역학조사 결과의 증명력을 매우 낮게 평가하였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에 관여하였다는 사실로부터 전문가 증인들이 수행하였던 연구 자체가 편향적이라고 평가하였다.
(다양한 유형의 연구결과 종합에 대한 오해) 위해성에 대한 연구가 많이 축적되지 않은 화학물질에의 노출과 그로 인한 건강피해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연구들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임상과 역학에 가중치를 주는 것이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경험칙임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는 비과학자로서 가지는 인과관계 판단에 관한 일반적 경험칙을 바탕으로 동물독성시험이라는 개별적인 연구 결과에 천착하였다.
(무위 결과에 대한 오해) 1심 재판부는 동물독성시험의 무위 결과를 해석함에 있어서 무위 결과는 실험이 귀무가설(또는 영가설)을 기각하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제한적으로 해석되는 과학계의 논리를 수용하기보다는 무위 결과가 실제 증명하고자 하는 가설(대립가설) 자체를 반증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동물독성시험의 통상적 방식에 대한 오해) 화학물질에 대한 동물독성시험은 화학물질의 농도에 따른 유해성 정도의 관계(용량-반응)의 구체적인 모습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농도 조건에서 시험을 실시하는 것이 통상적인 연구방법임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가 연구자들이 조건(농도, 노출 방식 등)을 바꿔가며 동물독성시험을 반복하였던 것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것저것 다 해보겠다’는 식의 편향적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통상적인 실험 방식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이다.
▢ 정책제언
○ 과학계의 특수한 경험칙에 부합하는, 과학적 증거의 종합적 증명력 판단
과학적 간접증거의 종합적 증명력 판단을 전적으로 법관에게 맡기는 자유심증주의 원칙 안에서 법관의 자의성을 제약하고 합리성과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증거에 적합한 경험칙과 논리법칙, 즉 과학자들 사이에서 통상적이라고 인정되는 과학 활동으로부터 얻어지는 특수한 경험칙과 연구방법론을 과학적 증거의 종합적 증명력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 전문가 위원회 및 공동보고서 제도 도입
다양한 유형의 과학적 연구로부터 위해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화학물질에 노출된 사실과 건강상 피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법관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편으로 건축분쟁에 활용되는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 위원회가 자유로운 회의를 통해서 화학물질 노출과 건강상 피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공동 보고서를 작성하여 법정에 제출한다면, 과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여 과학계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연구방법의 적정성 등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을 줄일 수 있고, 재판부는 보고서를 통해서 비전문가의 판단능력 한계를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 집중적 교호신문 제도 도입
여러 명의 전문가를 한꺼번에 출석시켜 동시에 신문을 행하는 토론식 신문(witness conference) 방식인 ‘집중적 교호신문 제도(Hot-tubbing)’는, 법관의 비전문성을 보완하고 전문가의 임의적 증언을 감시하고 조율할 수 있기 때문에 위해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화학물질에 관한 사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안적인 증거조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 기대효과
○ 화학물질 노출 피해의 법적 인과관계 판단의 합리성 제고
유해화학물질 노출 피해 구제를 위한 다양한 특별법에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두는 것은 사후적으로 피해 구제에는 도움이 되지만, 유해화학물질 노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새롭게 개발되는 신물질 노출 피해와 관련된 사법적 판단의 일관된 기준을 수립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건 분석을 통해서 제안된 과학적 증거의 종합적 증명력 판단 법리와 전문가 증인 신문 제도 개선을 통해 과학 활동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법관의 비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주요 키워드
화학물질, 위해성, 노출, 건강피해, 인과관계, 경험칙, 가습기살균제, CMIT/MIT